[脈을 잇다] 헛심 쓴다고?

우리 비단의 오묘한 멋 살려야죠

함창(상주)=문현웅 기자
입력 : 2014.10.14 03:04

[경북 상주 함창명주 이끄는 사람들]

4대째 품질로 승부하는 남수원
명주 壽衣 만드는 전광채·김영미
귀농한 쪽·감물 염색 전문 권성민
부부 합쳐 9代전통 허호·민숙희
아들·딸들도 합류… 대 잇는 가업

■우리는 '옛것은 비효율적이고 조악(粗惡)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편의와 첨단만 추종해온 사이 사라져가는 가치 있는 옛것이 많다. 이 중에는 한때 우리만의 자랑이었던 것들도 적잖다. 세상의 무관심, 심지어 비아냥 속에서도 이를 계승하고, 한 차원 끌어올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만난다.


잠사(蠶絲)업은 군주가 장려하는 한민족의 국책 사업이었다. 왕실은 경복궁·창덕궁 같은 궁궐 안에 잠실(蠶室)을 두고 뽕나무를 심었다. 왕비가 친히 누에 치고 고치 받는 의식을 했고, 임금은 매년 선잠단(先蠶壇)에서 잠신(蠶神)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렇게 생산된 한반도의 주단(紬緞)은 품질이 우수해, 일본은 물론 비단 종주국이라는 중국에도 수출됐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건국 후에도 양잠은 주력 수출 산업이었다.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에 잠사학과가 있었다.

그러나 1974년 일본이 생사 수입을 규제하며 위기가 왔다. 게다가 1992년 한·중 수교로 중국산 생사와 원단이 대거 유입되자, 국내 잠사업은 고사 위기에 처했다. 90년대 중반엔 전국 뽕밭이 70년대 중반의 5%만 남았다. 현재는 거의 전멸이다.

그럼에도 전통 비단의 맥을 이어가는 마을이 있다. 80년대까지 전국 유일의 명주장(明紬場)이 닷새마다 열리던 경북 상주시 함창읍이다. 이곳 명주잠업영농조합의 4명을 만났다.

남수원 (57) 장수직물 사장은 증조부 이래 4대째 잠사업에 종사한다. "귀 빠진 뒤 어른들이 누에 먹이고 베틀 돌리는 모습만 보고 컸으니까요. 숙명이려니 했죠." 70년대 중반 베틀 6대를 물려받아 가업을 이었다. 그 직후 일본발 위기가 닥쳤다. "갑자기 판매처가 없어져 망하기 직전까지 몰렸어요. 다 때려치우고 싶었죠. 하지만 견뎠어요. 그렇잖아도 200명 넘던 동네 양잠 인구가 10분의 1로 줄었는데, 저까지 빠지면 함창명주는 진짜 죽는 거니까요." 전기세를 아끼려 더운 날엔 팬티 바람으로, 추운 날엔 손에 입김 불며 일했다. 매출이 다소 트이기까지, 그렇게 20년을 버텼다. "우리는 옛 방식대로 실을 물에 적신 채 직조(織造)합니다. 마른 실을 짠 중국산과 달리 촘촘하고 결이 고와요. 품질로 승부해서 겨우 살아남은 거죠." 장수직물은 작년에 100년 넘게 전통 기술을 지켜온 공로로 경북도 지정 '향토뿌리기업'에 선정됐다.

전광채 (51) 함창명주 영광의류 대표는 명주 수의(壽衣)에 반해 함창에 눌러앉은 외지인이다. "한복 자수를 전공한 마누라 설득에 넘어갔어요. 전통 옷감 중에서 비단을 최고로 치잖아요. 고인께 입혀드리는 비단은, 못다 한 영화를 누리게 하는 예우라더군요. 멋지잖아요." 아내 김영미 (46)씨와 20년 넘게 명주 수의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노력했다. "비단은 썩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한때 고급 천으로 여겼던 나일론 수의를 비단으로 혼동해서 생긴 오해죠." 그는 "물론 삼베 수의도 우리 전통이지만, 한 전통에 치우쳐 다른 전통이 잊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권성민 (53) 정겨운산골 마린도요 대표는 귀농 15년차다. "중장비 기사로 일한 적 있고, 체육관도 운영했어요. 그러다 고향에 돌아왔죠." 그는 천연염색 전문가다. 감나무 1000평, 쪽 800평을 물려받았다. "쪽은 1㎏ 10만원, 감물은 20L에 7만원이나 하는 비싼 염색재예요. 근데 그게 앞마당에 널린 거잖아요. 이걸로 전통 염색법은 다 시도해 봤죠." 권씨가 물들인 명주는 거의 탈색되지 않는다. "제 나름대로 찾아낸 농도와 시간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재료를 아끼지 않는 거예요. 선조들이 단가 따져가며 염색했던가요? 본전 생각하는 순간 전통은 물 건너가는 겁니다."

허호 (55) 허씨비단직물 대표 역시 감물 천연염색 전문가다. "상주 특산인 감으로 선조들의 기술을 되살려 보려 했죠. 쉽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어렵더군요." 부인 민숙희 (52)씨와 5년을 매달렸다. "제가 외고조모부터 5대째, 마누라는 친정 쪽으로 4대째 명주 짜는 집안이에요. 도합 9대의 자존심을 걸고 도전했죠." 그는 2008년 감물 천연염색 작품으로 5개 공모전을 휩쓸었다. 작년에는 섬유 분야 '경북 최고 장인'에 선정됐다. "명주나 감이나 같은 상주 땅에서 난 것이라 그런지, 색이 오묘하고 아름답게 들어요. 다른 천이나 염료로는 이런 색을 살리질 못해요. 외국인 눈에도 예뻐 보이는지, 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호주에서 요청이 와 수출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이들은 잠사의 기술뿐 아니라 문화 전통까지 살리려고 애쓴다. 경주에서 중국 시안(西安)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의 중간 거점으로 함창명주박물관이 선정되도록 했고, 경북도·상주시와 한복진흥원 건립도 협의하고 있다. 노력은 다음 대로도 이어지고 있다. 남씨 아들 현태 (32)씨, 전씨 딸 선경 (24)씨, 권씨 아들 기훈 (26)씨, 허씨 아들 (29)씨가 이미 합세했거나 합류하기로 했다.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거, 보통 각오로 되는 일 아닙니다. 인정은커녕, 헛심 쓴다며 비웃음이나 사기 십상이죠. 그래도 물려주렵니다. 못난 나무가 선산 지킨다고, 저희 같은 어리석은 핏줄도 있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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