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옷은 사촌까지 덥다”는 속담이 있다. 가까운 사람이 부귀하게 되면 자기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말로, 명주옷은 곧 부귀나 출세의 상징으로 예로부터 귀한 옷감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한동안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등 화학섬유가 한때 범람했으나 사람들은 다시 자연 섬유를 찾게 됐고, 명주 옷감의 우아함과 따스함에 매료됐다.

  
▲ 전통 명주 베틀 앞의 허씨 내외.
ⓒ 박도

지난날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는 뽕나무 밭이 흔했고 누에를 많이 쳐왔지만 화학섬유가 판을 칠 때 거의 대부분 베어지고 지금은 전국에서 몇 군데밖에 찾아볼 수 없다.

천연염색을 하는 이로부터 경북 상주 함창이 전국 제일의 명주 고장으로 여태 그 명맥을 잇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먼 길을 찾아갔다.

50여 생산 가구 중에서 조상 대대로 명주옷감을 가장 많이 생산한다는 함창읍내 '허씨 비단직물'의 주인 허호(46) 민숙희(43) 부부를 만났다.

-이 지방이 명주의 주생산지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넓은 평야와 기후, 토질이 뽕나무 재배에 알맞았기 때문이다. 이 지방은 명주의 본 고장으로 상주에는 잠사곤충연구소, 잠종장이 있고상주대학교에는 잠사학과가 있다."

-언제부터 명주 생산을 해왔나?
"아득한 옛날부터 온 마을이 조상대대로 명주를 짜왔다. 나는 집안이 어려워 많이 배우지도 못해서 20대부터 어머니(서옥순, 2000년 작고)의 명주 짜는 일을 돕다가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어머니가 명주 베틀에서 짜던 전통 방식에 전기를 이용해 자동 장치를 추가해서 품질과 생산량을 듬뿍 늘렸다.

완전 초현대식 기계화의 유혹도 없지 않았지만 전통의 방법을 고수했다. 만일 그때 완전 기계화로 공장을 지었다면 아마 함창 명주 고유의 멋은 사라지고 그 명맥도 끊어졌을 것이다."

-현재 짜고 있는 명주실은 국산인가?
"솔직히 대부분 중국산이다. 우선 뽕나무가 전처럼 흔치 않고 사람들이 누에를 길러도 약용으로 기르는 게 더 이익이 되니까 굳이 고치로 만들지 않는다.

▲ 전통 명주 베틀
ⓒ 박도

원래 누에치기는 중국이 본 고장이다. 명주실만은 결코 중국제가 국산에 뒤지지 않는다. 명주를 짜는 기술은 함창만의 독특한 노하우가 있다. 다른 곳에서는 아직은 따라올 수 없는 솜씨와 기술, 전통이 있다.

지금은 농사꾼들이 누에고치보다 누에가루나 동충하초와 같은 약용쪽에 신경을 쓰지만 누에고치를 생산하는 게 더 이익이 된다면 곧장 고치 생산으로 바뀔 것이기에 어쨌든 누에 기르는 농가가 늘어나는 현상은 매우 바람직하다."

-함창 명주 자랑 좀 해 달라.
"첫째로 토속적인 고전미를 살리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옛날 명주 그대로 좁은 폭(15인치)을 유지하고 있다.

둘째로 자연스러운 투박함이 있다. 투박한 느낌은 굵은 실로 짜야만 나오는데, 굵은 실은 철사처럼 뻣뻣하기에 물에 푹 적셔야 부드러워집니다. 물에 적셔서 짜는 방법은 자동화된 직기로는 짤 수가 없고 옛날 손으로 짜던 베틀 원리대로 해야 한다.

셋째로 직물 조직이 아주 튼튼하다. 물에 불려서 부드러워진 상태로 짜는데 그것이 마르면 마른 실로 짠 것보다 훨씬 견고하다.

넷째로 옛날 방식대로 짜기 때문에 유행에 민감하지 않아서 상품 수명이 길다."

  
▲ 옥사(왼편)와 생사 고치
ⓒ 박도

-함창 지방의 명주 생산 규모와 종류는?
"50여 가구에서 가내 공업으로 생산하고 있다. 명주는 수의용과 옷감용으로 반반 정도 생산되는데, 앞으로는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천연염색에서 가공까지, 나아가서 고급 의류 완제품까지 생산하여 고급 브랜드를 만들 예정이다."

허씨 내외는 함창에 명주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집안 구석구석에 보관하고 있는 누에에서 명주실이 완성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모아놓은 여러 잠사와 방직 기구들을 보여주었다.

하나의 고치에서 뽑는 실의 길이가 자그마치 1400m 쯤 된다고 한다. 명주실에는 생사와 옥사가 있다. 생사는 누에 한 마리가 들어간 고치로부터 한 올의 명주실로 만든 것이고, 옥사는 누에 두 마리가 한 고치에 들어가서 한 올의 실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옥사는 한 올의 섬유를 질서정연하게 풀어내기가 어려워서 헝클어진 상태로 마디가 많다. 옛날에는 옥사는 품질이 나쁘다고 버리다시피 했는데, 요즘은 옥사가 더 귀하고 훨씬 값도 비싸다고 하면서 세상사만 아니라 명주도 시류를 타는 ‘새옹지마’라고 했다.

허씨는 집안이 워낙 가난해서 남보다 배우지 못한 채 어머니의 명주 짜는 일을 도왔던 게 평생 직업이 되었다면서 오히려 지난날의 가난을 고맙게 여겼다.

허씨는 또 두 아들 중 한 녀석이라도 가업을 물려받아 당신의 후계자로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도 자식 농사만은 마음대로 되느냐고 활짝 웃었다.

허씨는 당신의 일이 취미생활인 양 매우 즐겁다면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을 때의 쾌감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 명주실을 잣던 물레
ⓒ 박도

허씨는 “'옛 것은 뒤떨어졌다, 나쁘다'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의 옛 것을 현대감에 맞게 재창조하는 게 전통문화를 잇고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이라면서 당신 나름의 체험에서 우러난 전통문화론을 펼쳤다.

새로 옮긴 공장 겸 집 언저리에 한창 뽕나무를 옮겨 심었다면서 내년 봄 오디가 익었을 때 꼭 와서 맛보라는 허씨 내외의 인사말을 뒤로 한 채 귀갓길에 올랐다.

 

 

 

※ 이 기사는 저자로부터 이용허가를 받은 기사로 전원생활 2004년 6월 호에도 실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