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

명주고을 함창읍 ‘거대한 예술’이 되다

영남일보

페이지 정보

작성자허씨비단 댓글 0건 조회 33회 작성일 16-02-25 16:28

본문

| 11억 들여 마을미술프로젝트


14c2390792dfef41e128b73f93cf00c2_1670287464_1906.jpg

누에고치가 우화하여 날아가는 것을 형상화한 ‘염원-꿈을 꾸며’.<함창협동예술조합 제공> 


14c2390792dfef41e128b73f93cf00c2_1670287464_2681.jpg

‘하늘에서 함창으로 떨어진 명주실’로 이름 지은 함창 마을 미술 안내선.<함창협동예술조합 제공> 


14c2390792dfef41e128b73f93cf00c2_1670287464_337.jpg

예술가들의 손으로 다시 태어난 함창목공소. <함창협동예술조합 제공> 


14c2390792dfef41e128b73f93cf00c2_1670287464_3951.jpg

파마머리에 당근·무·배추 등으로 장식한 함창전통시장. <함창협동예술조합 제공> 


14c2390792dfef41e128b73f93cf00c2_1670287464_4554.jpg

함창협동예술조합으로 변신한 함창시장 한켠의 명주시장. 배냇저고리가 종이상자에 담겨 벽면에 설치돼 있다. <함창협동예술조합 제공> 



2년간 작가 200명·주민 협업시장 비가림시설도 아기자기 곳곳에 숨은 시·그림·문패 등 골목작품도 공간작품 못잖아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발상지 명주시장은 예술조합 탈바꿈 2시간 동안 2.5㎞ 누비고 나면 마을서 긴 이야기 나눈 듯 여운


천의무봉(天衣無縫·천사의 옷은 꿰맨 흔적이 없다). 천사의 옷이 정말 있다면 옷감은 명주일 것이다. 상주시 함창읍은 명주고을이다. 이 명주고을에 2014년과 2015년 2년간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실행됐다.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11억여원의 사업비를 지원 받아 2년 동안 작가 200명과 마을 주민들이 협동하여 함창읍내를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흰 줄 하나가 함창읍내를 감싸듯 풀어져 있다. 작가들이 ‘하늘에서 함창으로 떨어진 명주실’이라 이름 지은 이 흰 줄은 함창읍 중심지 일대를 감싸고 있다. 200명의 작가와 마을 주민들이 작업해 놓은 작품들은 구향리와 증촌리 일대 2.5㎞에 걸쳐 배치돼 있다. 명주실은 이 작품들을 찾아갈 수 있는 안내선이다. 바닥에 그어져 있는 이 선을 따라가면 작품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명주실 안내선은 함창마을미술의 안내센터격인 함창역에서 출발한다. 함창중·고등학교 앞, 문 닫은 목공소 입구에 낡은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함창목공소를 운영하던 늙은 주인이 손님을 기다리던 의자다. 목공소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인이 쓰던 기구와 기계가 모두 제자리에 배치돼 있다. 나무를 켜던 기계톱·대패·먹통·자귀와 각종 장부까지. 작가는 퇴락한 목공소를 리모델링하여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목공소 안에 들어가도 손댄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주인만 없을 뿐 나무만 들여오면 바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상태다. 목공소를 박제해 놓은 느낌이다. 실제 지붕과 벽·출입구 등을 손질할 때 목재는 이곳에서 가공하여 썼다. 작가들이 작업을 시작할 때 “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던 고령(高齡)의 목공소 주인은 작업의 끝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함창전통시장의 중앙에 있는 비가림시설은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의 얼굴로 형상화됐다. 단순한 아치형의 입구 지붕에는 헝클어진 명주실 같은 파마머리를 얹었으며, 파·배추·고추·오이·조기 등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채소와 과일·생선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천장도 나비·누에·새들로 장식돼 있다.


함창은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발상지다(1927년 1월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咸昌)에서 첫 번째 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작가 최현주는 여기에 착안해 함창시장 한켠의 명주시장을 함창협동예술조합으로 만들었다. 누에고치 모양의 흰색 들마루를 놓고 벽은 명주를 짤 때 쓰던 북으로 장식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명주로 지은 배냇저고리 50벌이 걸려 있다. 함창 명주로 옷을 지어온 지역의 아낙들이 꿰맨 것이며, 함창읍에서 태어나 읍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하러 가면 한 벌씩 나눠주기로 했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북은 대를 이어 명주를 짜고 있는 허호씨가 기증한 것이다.


안내선을 따라 걷다 보면 목공소나 시장,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던 슬레이트집, 양조장, 학생들의 작품으로 꾸며진 오방색 큐브 등 공간작품뿐만 아니라 담장에 숨은 그림, 거친 벽에 쓰인 시 한 줄, 가야왕국의 역사를 표현한 스테인리스 울타리, 앙증맞은 문패를 비롯한 골목 작품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여기저기서 튀어 나오는 작품에는 수십 년 이어온 함창 사람들의 생활이 있다. 생활보다 훨씬 긴 세월을 오가는 이야기, 역사가 골목을 활보한다. 함창마을미술은 그 이름처럼 사람 사는 모습, 이 고즈넉한 동네의 풍경과 어우러져 마을의 한 부분이 되어간다. 이 때문인지 2시간여에 걸쳐 명주실을 따라 한 바퀴 돌고 나면 함창 사람들과 긴 이야기를 나눈 듯한 여운이 남는다. 함창마을미술길은 색다른 둘레길 같다.